Wednesday, October 21, 2015

절대로 외우지 마라.

지금까지 몇 회의 칼럼을 연재하며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들은 요구사항이 있다. ‘너무 잘 나가는(?) 학생들의 이야기만 늘어놓으니 현실성이 없게 들린다. 부모로서 아이들의 과학 교육을 도와줄 수 있는 실제적인 부분을 언급해 달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우리의 아이들을 교육하며 부모님들이 말씀하시는 교육지침 중 필자가 느끼기에 가장 먼저 고쳐야 할 부분에 대해 언급하기로 하겠다.

학원에 온 학생이 의기소침 해 보인다면 대부분 기대치보다 낮은 성적 때문에 부모님의 꾸중을 들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부모님의 꾸중이 열이면 팔,구가 거의 같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없고 책을 봐도 이해가 잘 안 된다고? 그럼 달달 외우기라도 했어야지. 책을 다 외우면 정답이 나오게 되 있어!! 그렇게 해보지도 않고 네가 무슨 노력을 했다는 거니?”
이런 이야기를 학생 입을 통해 전해 들을 때마다 필자는 부모와 자녀간에 세대차이와 더불어 교육 시스템의 차이를 겪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부모님께서 경험하신 사지선다 형식의 암기한 내용을 풀어내면 되는 시험형식은 이제 그 종주국인 일본에서 조차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을….

암기. 그렇다. 공부를 함에 있어 암기 또한 학습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고 암기력이 좋은 학생이 공부를 잘 한다는 것도 당연히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실행중인 유럽식 과학 교육에서는, 특히 물리와 화학 그리고 우주과학에서는 암기가 가지는 효과가 우리의 기대에 비해 미미하다는 것이 문제다. 흔히 물리는 공식을 다 외우고 화학은 주기율표를 다 외우고하는 식으로 무조건 암기, 입력 방식으로 자녀가 열심히(!) 공부하기를 원하시는 부모님들을 뵐 수 있는데 현실을 말씀 드리자면 공식은 Formula sheet를 주기 때문에 외울 필요가 없고 주기율표 또한 당연히 제공되기에 암기의 필요성이 없다. 그런 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이니 잘난 척 하지 마라 라고 하신다면 우리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연말시험에서 접하게 되는 문제의 간단한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다.

마찰이 없는 경사면에 Trolley(활차)를 놓았더니 점점 가속하며 내려갔다. 그리고 경사면의 각도를 올릴수록 바닥에 도달하는 시간이 짧아졌다.’

이 실험에 대해 부모님 세대의 한국 문제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다음 중 시간이 줄어드는 이유를 옳게 설명한 것은?’
그리고 학생은 경사가 급해지면 더 많은 중력을 운동의 힘으로 사용해서 가속도가 커지기 때문에 빨리 움직이고 따라서 시간이 짧아진다는 내용의 답을 고르면 바로 정답으로 인정 되었다. 이런 형식의 문제에는 시스템과 환경에 대한 고찰도, 공식을 활용해 관계를 증명하는 노력도, 실험에 관계된 요소들에 대한 정확한 물리적 정의도 필요치 않다. 단지 같은 유형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알고 있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그러니 단순 암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약 같은 실험에 대해 유럽식 과정에서 문제를 출제 한다면 어떻게 될까? 정말 다양한 형태의 문제가 가능하지만 (데이터를 주고 공식을 유도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를 본다면,

a.     가속도를 정의 하라.
b.     경사면의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 무엇이 있는지 그려서 설명하고 가속도가 생기는 이유를 설명하라.
c.     현재 상황에서 경사면의 각도가 10도 만큼 더 커진다면 시간은 얼마가 될까?
d.     현실적으로 마찰력 때문에 c. 의 실험결과가 계산치와 다르다. 실험결과를 계산치와 가장 가깝게 하기 위한 조건을 서술해라.

위의 문제들을 보고도 무조건적 암기가 성적향상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부모님들은 안 계시리라 본다.

과학 공부의 핵심은 자연현상에 대한 관찰과 그에 대한 분석과 예상이다. 적어도 Y8까지는 그렇다. 그러나 이 후 성적에 대한 압박이 생기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젠 점수를 위한 공부를 해야만 할 시점이 되었고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해표현으로 일단락 된다. 과학적 현상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그리고 이해한 것을 이론적으로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이제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면 부모로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아이가 배우는 모든 과정을 다 공부해서 자세히 알려줘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는 분들도 계시리라 본다. 사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부모님께서 경미한 (혹은 중증의) ‘영어장애를 가지고 계시고 거기다가 생업이 바쁜 가운데 그런 상황은 바랄 수 없다.
그럼 우리 아이들의 과학 학습은 어떻게 도와야 할까?

첫째. 차이를 인정하자.
아무리 이곳에서 나고 자랐어도 아이들은 이미 한국어로 엄마, 아빠를 배웠고 한국어의 어순에 영향을 받은 아이들이다. 언어의 영향은 상당히 커서 개인이 사고하는 순서와 방식에 까지 미치게 되므로 우리 아이들의 사고 순서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어권의 결과 먼저 이유 나중일 수는 없는 것이다. 한편 학교의 교육과정은 당연히 유럽인의 사고에 맞추어져 있으니 우리의 아이들은 뭔가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듯한 알 듯 모를 듯 한 어색함 속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실제로 학교 과학교육에 있어 실험과 이론수업의 배치에 한국적 사고와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론 수업 중간 중간에 다음 챕터에 해당하는 실험을 병행하거나 한 챕터를 시작하기 전에 아예 아무 사전 지식 없이 실험만 몇 번을 되풀이 한 후 이론수업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아무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실험을 먼저하고 스스로의 가설을 세운 후 나중에 배우는 이론적인 부분과 맞춰보라는 것인데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한국아이들은 실험에서 이론을 도출하는 방식에 매우 취약하다. 명민하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니라 선천적인 아이들의 사고논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를 간과하고 결과만을 보고서 스스로 과학은 맞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둘째. 상식을 키우자.
뉴질랜드 현지의 아이들은 어릴 때 부터 아주 과격하게 논다. 던지고 부수고 처박히고.. 우리가 보기엔 방임과도 같은 부모의 관리 속에 아이들은 하고싶은 대로 놀며 자라고 좀 커서는 아빠가 취미 삼아 만지는 자동차, 목공기계, 운동장비.. 등등을 접하며 자연스레 과학적 상식을 쌓아간다. 그래서 그들은 환경적으로 실험에 강한 아이들로 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다 그런 것 아니지만 대다수가 어려서부터 놀이방, 공부방에서 자란다. 이는 환경과 문화와 관습의 차이이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아이들 교육을 위해 키위처럼 살아라 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하면 다양한 방면에서 상식을 쌓게 하는 일이다. 책을 통해, 비디오를 통해, 인터넷을 통해 검증된 자료를 반복해서 접하게 한다면 이런 상식이 분명히 컬리지 과학학습에서 빛을 보게 된다

셋째. 논리적 서술 훈련을 하자.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과학은 ?” 를 찾아내는 학문이며 현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면 과학은 이미 죽은 것이 된다. 그리고 이런 자세는 학습에도 이어져 있어서 세상에 존재하는 전 과정, 학년에 걸쳐 시험관들은 이 학생이 과연 왜? 라는 질문에 어떤 답을 제출하는지 알고 싶어한다. 뉴질랜드의 3대 학습과정 (NCEA, Cambridge, IB) 에서는 어떤 형식의 답변을 요구할까? 주로 서술형의 답변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은 논리적 사고와 더불어 논리적 서술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많은 경우에 논리적 서술 능력이 간과되고는 한다. 필자가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끔 이런 주문을 할 때가 있다. 방금 배우고 숙지한 내용을 필자에게 가르쳐 보라고만약에 가르칠 수 없다면 그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서술형 답변을 제대로 작성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분명히 가르칠 수도 있어야 한다. 아마 이 방법이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바로메터가 될수 있을것이다.
지면 과계상 짧게 줄여야 하지만 위의 세가지 포인트에 맞춰 가정에서의 조기 과학교육이 이루어진다면 뉴질랜드에서 살아갈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조금은 더 밝힐 수 있지 않을까 감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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